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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집행인의 아침
    / 인기작가 : 베스트 지수 100,000이 넘은적이 있는 작가 개돌청년

    연재편수 go 첫회보기 작품용량 2003.06 Kbytes

    최근등록일2017.01.14 20:08| 연재시작일2016.09.16

    조회1,557,165|추천31,622|선작9,338|평점비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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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의 서평, 사형집행인의 아침
    춤추는 선비 추천 5/2017.01.10
    뜰 링크 : http://yard.joara.com/user/yard_board_view.html?idx=1553990&sl_search=&sl_keyword=&PageNo=&yard_id=coolpao&cate_code=6


    압도적인, 너무나 독창적인 소재와 매력이 있는 주인공으로 읽는 이를 빨아들입니다. 다른 단점이 있다고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이 두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의 전개는 정말 압도적입니다. 이 정도로 특별한 소재를 읽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도 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레이드'라는 장르를 처음 보여줬던 '실탄'의 '나는 귀족이다'를 읽었을 때와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작품 자체를 떠나서 이런 소재와 상상력이 존재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는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한 때부터 다 읽어가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어쩌면 제 생각에는 흔히들 써먹고 마는 '회귀'나 '레이드'라는 장르보다도 더 대단할지도 모릅니다. 단언컨데, 이 소설이 보여준 소재는 개돌청년님이 아닌 다른 작가라면 작품으로 구성할 생각조차도 하지 못할 정도로 독창적입니다.

    당장 '사형집행인'이라는, 그 유사한 소재 자체를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저는 개돌청년님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독특하지만, 오로지 글쓴이 혼자만이 풀어낼 수 있는 이런 소재에 감탄이 나올 뿐입니다. 당장 '회귀'가 수없이 많은 소설들을 만들어내고 그 잔재들이 지금까지 이어지지만 '사형집행인'이라는 소재는 오로지 개돌청년님 혼자만이 풀어낼 수 있는, 완벽하게도 작가 그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대단한 상상력이었습니다.

    굳이 소재니 배경 따위를 지적할 필요도 없겠죠. 내가 본 소재 중에서 정말로 독특하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독특한 소재는 신비하고 독창적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점을 가집니다. 바로 '모두가 아무 것도 모른다면, 당연 어떤 것도 지적할 수가 없다.'라는 이점 말입니다. 이는 서평을 쓰면서 내가 소재나 배경이 왜 독특해야 되는지로 사용하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의 배경이나 소재가 신비하고 생소하다면, 그러면서도 그것 자체로 눈을 확 잡아끌 정도로 독특하다면 당연 읽는 입장에서는 눈을 뗄 수가 없게 될 뿐만 아니라 단점이니 흔하니 전형적이라니 지적할 말도 없게 됩니다. 왜 단점을 지적할 수 없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소재를 상상력으로부터 뽑아내서 구성한 작가, 개돌청년님 혼자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읽는 입장의 독자-들은 이 '사형집행인의 아침'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부분이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의 안 좋은 예는 '옥사건 디파일러'였습니다. 제가 이전에 서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이전의 서평에서 언급했던 바가 있지만 그 내용을 요약하겠습니다. 너무나도 생소하면서도 독창적이기는 하나 그것을 불충분한 설명이나 암시 혹은 복선만을 사용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독자에게 풀어내지 않고 오로지 작가 혼자만이, 작가만의 머릿속에만 가지고 있을 때 어떤 단점이 되는지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그 탓에 독자가 배제가 된다면 그건 글의 재미 이전의 문제라는 말을 했었죠.

    서평 링크 : http://yard.joara.com/user/yard_board_view.html?idx=1532857&sl_search=&sl_keyword=&PageNo=2&yard_id=coolpao&cate_code=6



    그런 부분에서 '사형집행인의 아침'은 확실히 더 좋았고 뛰어났습니다. 어쩌면 1인칭 시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했기에 그랬을지도, 그렇기에 더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시점에 관한 언급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꼈지만 앞서 언급했었던, 이런 독창적인 부분에 소재들 또 배경을 주인공이 주도해서 이끌어갑니다. 더 전문적으로 말하면 작품의 서술, 1인칭 시점이 주인공에게 집중되고 또 강조하면서 서술을 합니다. 즉 주인공을 강조하는데 시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이런 시점의 사용은 명확히 다른 소설들의 사용과 구분이 되며 때문에 제가 이 글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소설들, 차마 글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다른 소설이 1인칭 시점의 장점과 단점-3인칭 시점의 단점과 장점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시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가운데 개돌청년님의 '사형집행인의 아침'은 거의 완벽하게 1인칭 시점의 장점을 끌어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답답한 부분도 존재합니다. 작품 자체의 단점이라기보다는 시점 자체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1인칭 시점이라는 것 자체가 주인공의 행동이나 생각을 구속하며 따라서 전지적으로 작품의 세계관이나 배경을 보여주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즉 설명이나 묘사 등으로 독자에게 이를 풀어내서 설명하는데 '주인공' 그 자체가 제한이자 발목을 잡게 됩니다. 결국 1인칭 시점 자체의 틀을 따르자면 직접적으로 이를 설명할 수 없으며 오로지 간접적으로만 설명할 수밖에 없게 되죠.

    이런 단점들은 개돌청년님이 풀어내야만 하는 숙제와도 같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런 단점이 극대화가 됐을 때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옥사건 디파일러'가 충분히 말해줄 것입니다. 보통 타 소설, 가령 문단에 오른 현대소설의 경우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대화나 치밀한 복선 및 암시 등으로 이런 세계관을 '작가가 독자에게 가서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작품을 주의깊게 읽어서, 즉 독자가 작품에 다가오게 해서 이해하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방법이 단 한 발자국만 잘못 걸어도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다시금 '옥사건 디파일러'를 예로 들겠습니다.)

    이런 부분은 '드래곤라자'의 이영도 작가가 언급한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작품은 빙산 위의 10%와 빙산 아래, 보이지 않는 곳의 90%로 이뤄진다'라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1인칭 시점에서 느껴질 수밖에 없는 답답함, 그리고 이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요약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독자들이 답답하게 생각한다고 한들, 저는 '사형집행인의 아침'이 보여준 시점에 호의적입니다. 개돌청년님은 1인칭 시점을 통해서 주인공의 성격이 가질 수밖에 없는, 애초 모든 소설의 주인공이 가질 수밖에 없는 단점들을 시점의 틀 안에 최대한 감추고 반대로 나올 수 있는 장점은 완벽하게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를 확실하게 작품에서 보여줬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들을 작품의 '36화의 마지막 부분' 같은 점에서 확실히 느꼈습니다. 1인칭 시점만이 가진, 더해서 작가님 자신만이 가진 상상력이 만든 상황인 만큼 더더욱 그 부분에서 찬사를 보냅니다.

    이런 주인공 그리고 이 주인공이 가진 1인칭 시점으로 강조된, 이런 주인공의 모습을 읽는 입장에서 대체 누가 주인공을 싫어할 수 있을까요? 당장 개돌청년님이 사용하신 1인칭 서술법 자체가 그 모든 장점을 살리며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상대적으로 타 작품은 1인칭 시점을 사용했을 때, 3인칭 시점을 사용했을 때의 구분도 없이 그리고 장점이나 단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에 더더욱 이런 점이 부각이 됩니다.

    당장 다른 소설의 주인공과 이 소설의 주인공을 비교하기만 해도 그 장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타 작가의 작품 중에서 어느 정도의, 주인공에 관해서는 정말로 최악의 평가를 받는 '내 마음대로'의 주인공과 작가님의 이 '사형집행인'의 주인공을 비교해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확연히 뛰어나며 장점을 살리는데 시점이 완벽히 사용이 됐는지를 말이죠. 비교의 대상인 전자가 1인칭 시점을 사용함으로서 작품 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정말로 끔찍할 정도로의 단점만을 보여주며 주인공의 장점을 (1인칭 시점을 통해) 잘라내고 오로지 단점을 부각시켰다면 반대로 후자-사형집행인의 아침-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인공의 장점을 강조하며 단점은 장점의 뒤로 교묘히 숨겼습니다. 이렇게 보면 개돌청년님은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단점은 시점의 틀 안에 숨긴, 교활한 여우와 같습니다.



    서술법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야기의 굵은 가지만 서술되고 다른, 잔가지에 해당하는 부분은 서술되지 않는 것이 거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개돌청년님도 글을 쓰면서 이런 부분을 고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저는 도리어 보는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부터 많은 독자분들이 잔가지의 부족함을 많이 지적했고 전작들은 이런 서술법이 가진 단점들이 드러났었습니다. 이런 전개가 이전 작품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또 미숙했다는 것은 당장 개돌청년님의 사냥꾼의 밤, 마법사의 새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서술법은 완성되지 않은 채, 경험이 쌓이지 않은 채 사용된다면 가지를 너무나 잘라낸 나머지 본론만 덩그러니 남아 삭막한 느낌을 주게 된다는 것이 전작에서 증명이 됐죠. 마치 인간성을 배제한 로봇과도 같이, 감정이 생생히 살아있어야 될 글이 그렇게 느껴지게 됩니다.

    반면에 이번 작품의 경우는 그런 식의 전개가 정말로 숙련됐다고, 안정적이라고 느껴지게 했습니다. 굳이 작품의 잔가지(본래 주제와는 상관이 없는, '일상'이라 불리는 사건들)를 제외하더라도 본래의 줄기들이 아주 무성했죠. 조아라의 작품 대부분은 사실-본래의 주제를 생각하면-별 쓸모도 없게 느껴질 뿐인 잔가지에 치중하느라 본래의 가지가 어떻게 됐는지, 어떤 꼴이 됐는지도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때문에 그로 인한 수없이 많은 문제를 겪으며 작품을 망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분명 '사형집행인의 아침'의 경우 정말로 괜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조아라에서는 생소한' 오로지 중요사건과 핵심주제, 본론만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서술법을 사용했고 성공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으니까요.

    즉 잔가지가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해결법은 간단합니다. 그것도 작가님 자신이 이런 부분-서술법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에서 해답을 이미 만들어냈습니다. 잔가지가 부족한 만큼, 그 만큼의 굵은 가지(중요사건, 핵심적인 사건들)로 채워가면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본다면 잔가지가 없는 부분들은 단점이라고 하기보다는 조금 아쉬운 부분일 뿐이며 해결책은 분명히, '사형집행인의 아침'에서 작가님이 직접 보여주셨던 방법으로 해답이 나왔습니다.

    그렇기에 작가님이 사용하신 서술법은 굵은 가지로 이 작품이 채워져서 그 편수가 쌓였을 때, 당연 이 작품이 더 빛이 날 것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굵은 가지가 채워지지도 못한 상태라면 이런 서술은 정말로 최악의 방법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즉 작가님의 이후 써내려가실 작품들은 하나의 전제가 따르게 됩니다. '본래의 가지'가 잔가지가 없다고 해도 무성하다고 느낄 만큼 엄청나야 한다는 점이죠. 이 말은 작가님의 작품들은 필연적으로 그 세계관이나 이야기의 배경 자체가 엄청나게 거대해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비유하자면 다른 글들이 아름다운 나무 하나에 나뭇잎, 잔가지들이 무성한 것으로 눈길을 끌고 매력을 주지만 반대로 (잔가지가 배제될 수밖에 없는) 작가님의 서술법은 한 중간에 거대하고 엄청난, 나무 수 십을 합친 것보다 더 거대한 줄기를 세워놓음으로서 눈길을 끌고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죠. 웅장하고 거대한 배경이나 이야기 등등이나 혹은 세계관이 압도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작품 내에서 '중후반부'에서 힘이 빠지는 부분에 관해서 말을 해보겠습니다. [서술 상의 단점, 내가 보기에는 서술의 문제에 속하며 뒷심이 부족한 작가이다. 나아가 글의 본론을 강조하는 서술법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기에 주변가지에 관한 부분이 소홀하게, 또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단점]이라고 앞서 언급을 했습니다. 비슷한 말들을 많은 분들이 전작에서 했던 적이 있죠.

    사실 이런 부분의 전조는 멀리서 찾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작가님이 쓰신 IF 등의 외전이 바로 그것이죠. 만일 작가님이 고질병이 없었다고 가정할 경우, 외전이나 IF가 끼워넣어지기보다는 그런 (섹스 등의) 부분 자체가 어떻게든 작품 내에 어울리게, 본론 안에 자연스럽게 포함되는 하나의 '줄기, 본래의 줄기'로서 느껴지게 했을 겁니다. 작가님 자신이 보여주셨던 서술법에 이런 부분을 포함되기 했을 것이라는 거죠.

    사설이기는 하나 '섹스'는 그저 단순한 '섹스'라는 장면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내용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본론의 하나이거나 주제로서 혹은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발전하거나 더 가까워진다는 등의 감정교류, '하나의 주제이자 내용'으로서 서술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수많은 여성작가들에 의해 증명이 된 바가 있죠. (비록 그 장르가 로맨스이기에 섹스가 소설과 분리될 수가 없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물론 글 이외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의 소재로도 증명이 됐고 말입니다.

    당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아냥거리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만 하더라도 이런 서술법이 극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라이어 소프트'의 작품과 같은) 사실 미연시니 뭐니 하고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수준급에 오른, 흔히 말하는 '뽕빨'식의 소설들이 이런 식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조금 미숙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분명 이런 작품들을 읽을 때, '섹스' 부분의 감정적 교류에 한해서 작가님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그런 게 불가능하다면 아예 직접 옆에 야한 동영상을 틀어놓고 '섹스'를 쓰는 방법도 존재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성인'의 요소 자체를 배제하고 오로지 '성적요소'만 보여주는, 독자의 성욕을 능욕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아주 끔찍한 방법을-'판치라, 17세 이용가'라고 제가 정의하는 서술법을-사용할 수도 있겠죠. 팬티만 보여주고 그 속은 보여주지 않는 것 같은 서술법 말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형집행인의 아침'의 경우는 내용과 밀접히 관련되지 않은 '섹스' 부분을 심지어는 작품 자체와 분리시킴으로서 위화감을 만들었습니다. 즉 관련이 없는 부분이 심지어는 어울리지도 않게 작품 사이에 끼워져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입장에서는 외전이 하나둘 늘어났을 때부터가 작품의 '중후반부부터 힘이 많이 빠지게 됐다'라는 말에 해당하는-힘이 빠지기 시작한-때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글의 허점 역시도 존재했습니다. 작가님 자신이 전작부터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 정확히는 전작에서 숱하게 보여줬던 문제 역시도 이 글에서 나타났습니다. 정확히는 글을 완벽히 마무리하지 못하는, 그렇게 느껴지게 만드는 결말입니다. 비유하면 입을 크게 벌릴 수 있을 만큼 벌렸지만 정작 다물어야할 때 다물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앞서 언급한, 작가님만이 가지시는 서술법에서 따라올 수밖에 없는 문제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뒷심이 부족하다는 점은 이미 전작에서부터 다른 독자들이 지적해왔던 문제점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언급하는군요. 흔히들 이를 '용두사미'라고 비꼬기도 합니다. 글의 시작은 좋았지만 글의 끝은 우습다는 의미죠. 다급히 마무리해서 글에서 호언장담했던 것들의 절반도 끝내지 못했다거나 아예 말만 꺼내고 해결도 못한 것들이 많을 때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다만 '사형집행인의 아침'은 이런 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더 정확히는 '용두사미'라는 말은 작가님이 겪으신 문제를 정의하는 말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개돌청년님은 글 내에서 풀어냈던 여러가지들은 마무리했습니다. 다른 글처럼 잊어먹거나 넘겨버리거나 하지 않았죠. 그보다는 글에서 호언장담처럼 느껴지게 분위기를 풀어낸 것들에 반해 정작 그것들을 풀어내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은 너무나 직설적이고 간단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개돌청년님 그 자신의 서술법-잔가지가 아니라 중심줄기에만 집중한-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해결법을 권유합니다. '복선이나 암시 등등 풀어내야 하는 부분을 몰아서 쓰지 말 것'입니다. 이는 앞서 말했던 '빙산'에 관한 이영도 작가의 말과도 어느 정도 공유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암시나 복선은 천천히,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마치 엉킨 실을 풀어내듯 풀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개돌청년님은 실수를 했습니다. 이야기의 마무리나 단락의 끝부분에서 마치 '알렉산더가 엉킨 줄을 풀어내는 방법'과도 같이 몰아서 혹은 극단적으로 풀어버린 것이죠. 비유하면 천천히 풀어내야 되는 줄들을 그냥 칼로 동강 잘라버렸습니다.



    암시나 복선 이외의 문제에 관해서는 또 다르게 비유를 해볼 수도 있겠군요. 글의 결말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달리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쉬면서 그 옆의 풍경이나 나무 혹은 흐르는 강물들을 보며 즐기며 마침내는 엄청난 고난이 가득인 마지막 도착점을 이겨내며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나 아니면 기대했던 선물 등등이 쌓인 낙원에 도착하는 것이 바로 일반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 '사형집행인의 아침'부터 그 전작까지, 개돌청년님의 '사형집행인의 아침'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주변을 보기보다는 그저 목표 하나만을 보고 옆의 풍경이 어떤지는 잘 보지 않은 채로 그저 내달리기만 할 뿐입니다. 걷지도, 쉬지도 않고 그저 내달리면서 잠깐 숨을 고르기만 하는 것이 휴식의 다입니다. 앞서 정리했듯 '섹스 그 자체'가 이야기에 섞였다면 '걷는 등의 휴식'에 속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 됐지만 글과 함께 쉬지도 못하고 달려온 독자들은 너무나 숨이 가쁠 뿐이죠. 당장 위에 정리했듯 천천히 풀어내야 되는 줄들이 순식간에 풀려버린 탓에 그리고 그런 부분을 눈도 돌리지 않고 봐야했던 탓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더해서 그렇게 내달린 끝에 다다른 도착점 그리고 도착점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도 허망하기만 합니다. 꽃길이어야 되는 결말, 즉 길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부분은 그저 일직선일 뿐입니다 도착해도 기다리는 사람이 몇 명 뿐이고 선물 같은 것도 없습니다. 물론 다른 소설도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타 소설의 경우, 직접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노블레스의 투데이 베스트에 오른 몇몇 작품은 '그저 병을 거꾸로 세우는 정도'인데 엄청난 박수와 환호를 받는 식으로 써서 비아냥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이 '사형집행인'의 경우는 '마왕을 때려잡거나 세상을 구하거나 우주를 멸망에서부터 막는' 식의 엄청난 일을 했음에도 정작 대단하다고 하거나 환호를 해주는 사람은 몇 명 정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차이점이자 문제이죠.

    제 개인적으로는 결말을 질질 늘려서 쓰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글의 막을 내고 에필로그를 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돌청년님의 작품에서만큼은 이런 부분이 필요악으로서 존재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에필로그를 '에필로그'로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글의 모든 사건이 종결이 된 이후에 그 뒤에 붙일 '기승전결 중에 결'의 일부분으로서-에필로그는 별개로 서술을 하고, 결말에 덧붙이거나 추가할 내용으로서-서술을 해야 된다는 것이죠.

    물론 제가 했던 말이 완벽한 비유는 아닐 것입니다. 애초에 길을 무작정 내달리기는 했지만 그런 것들, 사건이나 과정들이 그저 단순한 길이기만 한 다른 소설과 다르게 '사형집행인의 아침'은 그 길이 밋밋하지 않게 누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함정이 있으며 가파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합니다. 즉 굴곡이 존재해서 그 자체로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그 마무리 역시도 앞서 말했듯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즉 다른 소설들이 길 주변의 풍경을 볼거리로 만든다면 '사형집행인의 아침'은 길을 걷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볼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분명 장점이며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전작에서부터 꾸준히 작가 자신만의 서술법을 다듬어온, 작가 혼자만이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서술법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개인적으로도 조아라의 소설들을 읽어오면서 이런 서술법-심지어는 유사한 서술법조차-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작품을 위해 세 가지 해결방법을 조언하고 싶습니다. 아니 이미 했다고도 볼 수 있겠군요. 첫 번째로는 아주 거대한 세계관-많은 (핵심주제의) 이야기를 사용함으로서 이야기의 잔가지가 없는 단점 자체가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너무나 거대하다면 잔가지 같은 부분은 그저 먼지 같은 티끌, 없어도 되는 것들이 될 뿐이죠. 다음으로는 복선과 암시 등등을 몰아서 풀어낼 필요가 전혀 없으니 그보다는 이야기 전체(즉 첫 번째의 해결법을 사용했을 때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거대한, 많은 이야기', '거대한, 압도적인 세계관' 등)에 묻어가면서 천천히 풀어가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말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결말 자체의 허무한 느낌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아예 에필로그나 후일담 그 자체를 결말에 속하게 만드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좋겠다는 점이죠. 그렇다고 그냥 덩그러니 (소제목만 같게 하는 식으로) 붙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붙이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섹스' 부분에 관해 서술하는 방법을 조언한 것과 같이) 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상이 제가 개돌청년 작가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으실 다른 독자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만이 들었으며 '그 소재 자체만을 따지자면, 정말 오랜만에 노블레스 이용권이 아깝지 않은 작품을 읽었다'라는 생각을 했다 말하고 싶습니다. 독특한 서술법에 더해 주인공의 매력은 물론이며 소재나 배경 자체만을 따지자면 '메모라이즈'를 처음 읽었을 때, '전생검신'을 처음 읽었을 때와 같았습니다. 이런 생소하고도 흥미로운 소재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 느낌은 가히 '회귀'라는 소재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비슷했습니다. 독자분들 중에서는 분명 처음 메모라이즈가 연재될 당시에 충격을 아직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다크 소울 3'라는 게임을 해본 적이 있고 또 재미있게 즐긴 적이 있습니다. 생소했으며 독특했고 플레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거기에 한 번 이 게임을 하고 나니까-즉 길들여지고 나니까-1, 2, 3 등등의 시리즈부터 DLC까지 모두 사게 됐죠. 서평 중에 갑자기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장담하건데, 아마도 저는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은 아마 다음 시리즈 역시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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